술을 마셨을 때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속이 불편해지는 경험, 한 번쯤 해보셨을 거예요. 흔히 ‘술톤’이라고 불리는 이 반응은 단순히 민망함을 넘어, 몸이 보내는 위험 신호일 수도 있어요.

특히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흔한 이 현상은 과학적으로 “아시아 플러시 증후군(Asian flush syndrome)”이라고 불립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요?
얼굴이 붉어지는 이유는 바로 ‘효소 문제’
술을 마시면 간에서 두 단계의 분해 과정을 거치며 알코올이 해독된다는 건 앞 편에서 말씀드렸죠. 첫 번째 단계에서는 알코올이 아세트알데하이드라는 독성 물질로 바뀌고, 두 번째 단계에서 알데하이드 탈수소효소(ALDH)라는 효소가 이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아세트산으로 분해하며 해독을 마무리해요.
그런데 문제는! 많은 동아시아인이 이 ALDH2 효소의 활성이 떨어지는 유전형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이 유전형을 ALDH2*2라고 부르는데, 이 변이형은 효소가 거의 작동하지 않거나 매우 약하게 작동해요. 그 결과, 술을 마시면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몸속에 쌓이고, 이로 인해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빨리 뛰고, 메스꺼움이나 두통까지 생기게 되는 거죠.
홍조는 단순한 민망함이 아닌 ‘경고 신호’
많은 사람들이 얼굴이 붉어지는 걸 그저 체질이나 혈액순환 탓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몸이 “이건 해롭다!”고 보내는 강력한 신호예요. 아세트알데하이드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1군 발암물질로 분류돼 있어요. 특히 식도암, 두경부암의 위험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죠.
연구에 따르면, 이 ALDH2 유전형이 결핍된 사람은 술을 자주 마실 경우 식도암 위험이 6~10배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해요. 즉, 얼굴이 붉어진다면 단순한 체질을 넘어서 건강에 대한 경고등이 켜졌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홍조 체질일까?
아시아인 중 약 30-50%는 이 ALDH2*2 유전형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어요. 특히 한국인의 약 30-40%는 이 결핍형에 해당합니다. 중국, 일본에서도 비슷한 비율이 보고돼 있고요. 반면, 유럽계나 아프리카계 인종에서는 이 변이형이 거의 없습니다. 즉, 이 홍조 반응은 동아시아인에게 특화된 유전적 특성인 셈이죠.
술 마시면 점점 덜 붉어지는 건 ‘내성이 생긴 것’일까?

가끔은 “예전엔 얼굴이 빨개졌는데 요즘은 괜찮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다면 효소가 생긴 걸까요? 아쉽게도 그건 아니에요. ALDH2 결핍은 유전적으로 고정된 것이라 훈련이나 연습으로 바뀌지 않아요.
오히려 반복된 음주로 몸이 독성에 적응하거나, 감각이 무뎌졌을 가능성이 더 높아요. 즉, 여전히 아세트알데하이드는 쌓이는데 몸이 그냥 참는 거예요. 이것은 더 위험한 상태일 수 있어요. 체내 독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며, 그에 따른 건강 손상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죠.
홍조 체질은 오히려 보호기전이 될 수도?
아이러니하게도, 이 홍조 반응이 오히려 과음을 억제해주는 보호기전이 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어요. 술을 마시면 너무 힘들어서 애초에 많이 못 마시게 되니까, 알코올 중독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반대로, 이 체질을 무시하고 억지로 술을 즐기게 된 경우, 아세트알데하이드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며, 더 큰 건강 위험에 노출될 수 있어요. 이는 흡연이나 간 질환 등 다른 위험 요소와 겹치면 더 위험하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홍조가 있다면 절주 또는 금주가 최선입니다. 특히 식도나 위 점막이 약한 사람이라면 더 조심해야 해요.
술을 마시더라도 천천히 마시고, 물을 충분히 함께 마시는 것이 좋아요. 알코올 농도 상승을 늦추고 탈수를 줄여줄 수 있어요.
빈속에 마시는 건 절대 금물! 안주와 함께 천천히 섭취하면 간이 부담받는 속도를 줄일 수 있어요.
술을 마실 때마다 얼굴이 붉어진다면, 단순히 “체질이 그래” 하고 넘기지 말고,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한번쯤 진지하게 받아들여 보세요. 다음 편에서는 알코올이 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지방간, 숙취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몸에 무리를 덜 주는 음주 습관을 함께 고민해봐요.
'생물학 맛보기 > 음식의 생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코올] 4편 : 적절한 음주 주기, 양, 음주 후 관리 (1) | 2025.04.08 |
---|---|
[알코올] 3편 : 알코올과 간 – 지방간과 숙취의 비밀, 숙취해소 팁 (0) | 2025.04.08 |
[알코올] 1편 : 알코올의 흡수, 해독, 아세트알데하이드 (0) | 2025.04.08 |
[바이오틱스] 5편 : 매일 실천하는 장내 미생물 관리법 (0) | 2025.04.07 |
[바이오틱스] 4편 : 포스트바이오틱스 - 종류, 효과, 섭취, 주의사항 (1) | 2025.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