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wis 구조를 그리면 어떤 원자와 어떤 원자가 연결되어 있는지, 단일 결합인지 이중 결합인지, 고립 전자쌍이 몇 개인지는 알 수 있어요. 그런데 Lewis 구조는 보통 종이 위에 평면으로 그려지죠. 실제 분자는 평면 위에 납작하게만 존재하지 않아요. 원자들은 3차원 공간에서 일정한 방향과 각도를 가지고 배열돼요.
이때 분자의 모양을 예측하는 데 사용하는 대표적인 모형이 VSEPR 모형이에요. VSEPR은 valence shell electron pair repulsion의 약자이고, 우리말로는 원자가 껍질 전자쌍 반발 모형이라고 해요. 이름 그대로 중심 원자 주변의 원자가 전자쌍들이 서로 반발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서로 멀리 떨어지는 방향으로 배열된다는 생각이에요.
분자의 모양을 예측할 때 중요한 것은 “원자만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먼저 중심 원자 주변에 전자 영역이 몇 개 있는지를 세는 것이에요. 결합 전자쌍도 공간을 차지하고, 고립 전자쌍도 공간을 차지해요. 이 전자 영역들이 서로 반발을 최소화하도록 배치되면 전자 영역의 기하학적 구조가 정해지고, 그중 실제 원자핵의 위치만 따로 보면 분자의 기하학적 구조가 정해져요.
VSEPR 모형의 기본
VSEPR 모형은 분자 구조를 예측하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유용한 모형 중 하나예요. 중심 원자 주변의 결합 전자쌍과 고립 전자쌍이 서로 밀어내기 때문에, 이 전자 영역들이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는 방향으로 배열된다고 보는 거예요.
여기서 전자 영역이라는 표현이 중요해요. 단일 결합은 당연히 전자 영역 1개예요. 이중 결합이나 삼중 결합도 전자쌍이 여러 쌍 들어 있지만, 중심 원자에서 보면 특정 방향 하나를 차지하므로 전자 영역 1개로 세요. 고립 전자쌍도 전자 영역 1개예요.
예를 들어 CO₂에서 중심 원자는 C이고, 양쪽 O와 각각 이중 결합을 하고 있어요. 이중 결합 두 개가 있으므로 중심 C 주변의 전자 영역은 2개예요. 전자 영역 2개가 서로 가장 멀리 떨어지려면 180°로 배치되는 것이 가장 안정해요. 그래서 CO₂는 선형 구조가 돼요.
반면 H₂O에서 중심 원자는 O예요. O는 H 두 개와 결합하고, 고립 전자쌍을 두 쌍 가지고 있어요. 결합 전자 영역 2개와 고립 전자 영역 2개를 합치면 전자 영역수는 4개예요. 전자 영역 4개는 기본적으로 정사면체 방향으로 배열돼요. 하지만 실제 원자만 보면 H 두 개만 보이기 때문에 물 분자의 모양은 굽은형이 돼요.
전자 영역의 기하학적 구조와 분자의 기하학적 구조
여기서 꼭 구분해야 하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전자 영역의 기하학적 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분자의 기하학적 구조예요.
전자 영역의 기하학적 구조는 중심 원자 주변에 있는 모든 전자 영역의 배열을 말해요. 여기에는 결합 전자쌍뿐 아니라 고립 전자쌍도 포함돼요. 즉 전자가 차지하는 모든 공간을 기준으로 구조를 보는 거예요.
분자의 기하학적 구조는 실제 원자핵의 위치만 보고 정하는 구조예요. 고립 전자쌍은 분자 모양 이름을 붙일 때 직접 포함하지 않아요. 고립 전자쌍은 공간을 차지해서 구조를 바꾸지만, 분자 모양을 그릴 때는 원자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NH₃를 생각해볼게요. 중심 N 주변에는 N—H 결합 3개와 고립 전자쌍 1개가 있어요. 전자 영역수는 4개이므로 전자 영역의 기하학적 구조는 정사면체형이에요. 하지만 고립 전자쌍 하나는 원자가 아니므로, 실제 N과 H 원자들의 위치만 보면 삼각뿔형이 돼요.
H₂O도 마찬가지예요. 중심 O 주변 전자 영역은 O—H 결합 2개와 고립 전자쌍 2개, 총 4개예요. 전자 영역의 기하학적 구조는 정사면체형이지만, 원자 위치만 보면 H—O—H가 굽어 있는 굽은형 구조예요.
이 구분을 하지 않으면 VSEPR에서 자주 헷갈려요. “전자 영역 배열”과 “분자 모양”은 같을 수도 있지만, 고립 전자쌍이 있으면 달라질 수 있어요.
VSEPR 모형을 적용하는 순서
분자 모양을 예측할 때는 순서대로 접근하면 훨씬 편해요.
먼저 Lewis 구조를 그려요. 원자가전자 수를 세고, 중심 원자를 정하고, 결합과 고립 전자쌍을 배치하죠. 그다음 중심 원자 주위의 전자 영역 수를 세요. 이때 다중 결합은 전자 영역 1개로 세야 해요. 이중 결합이라고 2개로 세거나, 삼중 결합이라고 3개로 세면 안 돼요.
전자 영역 수를 세고 나면, 전자 영역 사이의 반발이 최소가 되도록 배열을 정해요. 이것이 전자 영역의 기하학적 구조예요. 마지막으로 실제 원자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고 분자의 기하학적 구조를 정해요. 고립 전자쌍은 전자 영역 배열에는 포함하지만, 분자 모양 이름을 붙일 때는 직접 포함하지 않아요.
정리하면 흐름은 이렇게 돼요.
Lewis 구조 작성 → 중심 원자 주변 전자 영역수 계산 → 전자 영역의 기하학적 구조 결정 → 결합 전자쌍의 위치를 바탕으로 분자 모양 결정
이 순서를 익히면 분자 구조 예측이 훨씬 안정적으로 돼요.
전자 영역 2개 : 선형 구조

중심 원자 주변 전자 영역이 2개라면 두 전자 영역은 서로 180° 떨어지는 방향으로 배열돼요. 이것이 선형 구조예요.
CO₂가 대표적인 예예요. Lewis 구조는 O=C=O로 나타낼 수 있어요. 중심 C에는 고립 전자쌍이 없고, 양쪽 산소와 이중 결합 두 개를 해요. 이중 결합 각각은 하나의 전자 영역으로 세므로 중심 C 주변 전자 영역수는 2개예요. 두 전자 영역은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하므로 180°로 배열되고, 분자 모양도 선형이에요.
전자 영역의 기하학적 구조도 선형이고, 분자의 기하학적 구조도 선형이에요. 고립 전자쌍이 없기 때문에 두 구조가 같아요.
전자 영역 3개 : 평면 삼각형과 굽은형

전자 영역이 3개이면 전자 영역들은 한 평면 안에서 120°씩 벌어지는 배열을 가져요. 이것이 평면 삼각형 구조예요.
BF₃를 예로 들 수 있어요. 중심 B는 F 세 개와 결합하고, 중심 B에는 고립 전자쌍이 없어요. 전자 영역은 결합 3개, 총 3개예요. 따라서 전자 영역의 기하학적 구조는 평면 삼각형이고, 실제 원자 배열도 평면 삼각형이에요. 결합각은 약 120°예요.
그런데 전자 영역 3개 중 결합 전자쌍이 2개이고 고립 전자쌍이 1개라면 분자 모양은 굽은형이 돼요. 예를 들어 NO₂⁻ 같은 경우를 생각할 수 있어요. 중심 N 주변에 산소와의 결합 영역 2개와 고립 전자쌍 1개가 있으면 전자 영역은 3개예요. 전자 영역 배열은 평면 삼각형이지만, 원자 위치만 보면 산소 두 개와 질소가 굽은 형태로 배열돼요.
즉 전자 영역수 3개에서는 고립 전자쌍이 없으면 평면 삼각형, 고립 전자쌍이 하나 있으면 굽은형이 돼요.
전자 영역 4개 : 정사면체, 삼각뿔형, 굽은형

전자 영역이 4개이면 전자 영역들은 3차원 공간에서 정사면체 방향으로 배열돼요. 이상적인 각도는 109.5°예요.
CH₄는 가장 대표적인 정사면체 분자예요. 중심 C 주변에는 C—H 결합이 4개 있고, 고립 전자쌍은 없어요. 전자 영역 4개가 모두 결합 전자쌍이므로 전자 영역의 기하학적 구조도 정사면체형이고, 분자의 기하학적 구조도 정사면체형이에요. H—C—H 결합각은 약 109.5°예요.
NH₃에서는 중심 N 주변 전자 영역이 4개예요. N—H 결합 3개와 고립 전자쌍 1개죠. 전자 영역 배열은 정사면체형이지만, 원자 위치만 보면 H 세 개가 N을 중심으로 삼각뿔처럼 배열돼요. 그래서 분자 모양은 삼각뿔형이에요. 결합각은 이상적인 109.5°보다 작아서 약 107°예요.
H₂O에서는 중심 O 주변 전자 영역이 4개예요. O—H 결합 2개와 고립 전자쌍 2개가 있어요. 전자 영역 배열은 역시 정사면체형이지만, 원자 위치만 보면 굽은형이에요. H—O—H 결합각은 약 104.5°로, NH₃보다도 더 작아요.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요.

CH₄, NH₃, H₂O는 모두 중심 원자 주변 전자 영역수가 4개이므로 기본적으로 정사면체 배열을 바탕으로 해요.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하면 결합각이 모두 109.5°일 것 같아요. 하지만 실제 결합각은 CH₄가 109.5°, NH₃가 약 107°, H₂O가 약 104.5°예요. 고립 전자쌍 수가 늘어날수록 결합각이 더 작아져요.
왜 고립 전자쌍이 결합각을 줄일까?

고립 전자쌍은 결합 전자쌍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해요. 결합 전자쌍은 두 원자핵 사이에 공유되어 있어요. 즉 전자구름이 두 원자핵 사이에 길게 퍼져 있는 형태예요. 반면 고립 전자쌍은 한 원자핵에만 가까이 머물러 있어요. 중심 원자 가까이에 전자밀도가 더 크게 몰려 있으므로 주변 전자 영역을 더 강하게 밀어내요.
그래서 반발 세기는 보통 다음 순서로 생각해요.
고립 전자쌍-고립 전자쌍 반발 > 고립 전자쌍-결합 전자쌍 반발 > 결합 전자쌍-결합 전자쌍 반발
CH₄에는 고립 전자쌍이 없어요. 네 개의 C—H 결합 전자쌍이 비교적 균등하게 반발하므로 결합각이 109.5°로 유지돼요.
NH₃에는 고립 전자쌍이 하나 있어요. 이 고립 전자쌍이 N—H 결합 전자쌍들을 아래쪽으로 조금 밀어내면서 H—N—H 결합각이 약 107°로 줄어들어요.
H₂O에는 고립 전자쌍이 두 개 있어요. 두 고립 전자쌍이 O—H 결합 전자쌍을 더 강하게 밀어내므로 H—O—H 결합각은 약 104.5°까지 작아져요.
즉 같은 전자 영역수 4개를 가지더라도 고립 전자쌍의 개수에 따라 실제 분자 모양과 결합각이 달라져요.
전자 영역 5개 : 삼각쌍뿔 구조와 다양한 분자 모양

전자 영역이 5개이면 전자 영역 배열은 삼각쌍뿔형이에요. 중심 원자를 기준으로 세 개의 전자 영역이 한 평면에 120° 간격으로 놓이고, 나머지 두 개는 위아래 축 방향에 놓여요. 그래서 이 구조에서는 120°와 90°의 관계가 함께 나타나요.
전자 영역 5개가 모두 결합 영역이면 분자 모양도 삼각쌍뿔형이에요. 대표적인 예는 PCl₅예요. 중심 P가 Cl 다섯 개와 결합하고 고립 전자쌍이 없으므로 전자 영역 배열과 분자 모양이 모두 삼각쌍뿔형이에요.
결합 영역 4개와 고립 전자쌍 1개가 있으면 시소형 구조가 돼요. 대표적인 예는 SF₄예요. 중심 S 주변에 결합 4개와 고립 전자쌍 1개가 있어 전자 영역수는 5개예요. 전자 영역 배열은 삼각쌍뿔형이지만, 실제 원자 위치만 보면 시소처럼 한쪽이 기울어진 모양이 돼요.
결합 영역 3개와 고립 전자쌍 2개가 있으면 T자형 구조가 돼요. 대표적인 예는 ClF₃예요. 중심 Cl은 F 세 개와 결합하고 고립 전자쌍 두 개를 가져요. 전자 영역은 총 5개이고, 고립 전자쌍 두 개가 들어가면서 실제 F 원자 세 개는 T자 모양으로 배열돼요.
결합 영역 2개와 고립 전자쌍 3개가 있으면 선형 구조가 돼요. 대표적인 예는 XeF₂예요. 중심 Xe 주변에는 F와의 결합 2개와 고립 전자쌍 3개가 있어요. 전자 영역수는 5개라 삼각쌍뿔형 배열을 바탕으로 하지만, 원자 위치만 보면 F—Xe—F가 직선으로 놓여 선형 분자가 돼요.
전자 영역 5개에서는 고립 전자쌍이 어디에 놓이는지가 특히 중요해요. 삼각쌍뿔 구조에는 적도 위치와 축 위치가 있고, 고립 전자쌍은 보통 반발을 줄이기 위해 적도 위치를 선호해요. 그래야 다른 전자 영역과의 90° 반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SF₄, ClF₃, XeF₂의 구조가 각각 시소형, T자형, 선형으로 나타나요.
전자 영역 6개 : 팔면체 구조와 그 변형

전자 영역이 6개이면 전자 영역 배열은 팔면체형이에요. 중심 원자에서 여섯 전자 영역이 x, y, z축의 양방향으로 뻗는다고 생각하면 돼요. 서로 인접한 영역 사이 각도는 90°이고, 마주 보는 영역은 180°예요.
전자 영역 6개가 모두 결합 영역이면 분자 모양도 팔면체형이에요. 대표적인 예는 SF₆예요. 중심 S가 F 여섯 개와 결합하고 고립 전자쌍이 없으므로 전자 영역 배열과 분자 모양이 모두 팔면체형이에요.
결합 영역 5개와 고립 전자쌍 1개가 있으면 사각뿔형 구조가 돼요. 대표적인 예는 BrF₅예요. 중심 Br 주변에 F와의 결합 5개와 고립 전자쌍 1개가 있으므로 전자 영역수는 6개예요. 전자 영역 배열은 팔면체형이지만, 고립 전자쌍 하나를 제외하고 원자만 보면 사각형 바닥 위에 꼭짓점 하나가 올라간 사각뿔형 구조예요.
결합 영역 4개와 고립 전자쌍 2개가 있으면 사각평면형 구조가 돼요. 대표적인 예는 XeF₄예요. 중심 Xe 주변에 F와의 결합 4개와 고립 전자쌍 2개가 있어요. 전자 영역 배열은 팔면체형이지만, 두 고립 전자쌍이 서로 마주 보는 위치에 자리 잡으면 남은 F 네 개는 한 평면 위에 사각형으로 배열돼요. 그래서 분자 모양은 사각평면형이에요.
전자 영역 6개에서는 고립 전자쌍들이 서로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위치를 차지하려고 해요. 고립 전자쌍 두 개가 있으면 서로 180° 떨어지는 위치를 선호하고, 그 결과 XeF₄처럼 사각평면형 구조가 나타날 수 있어요.
다중 결합도 하나의 전자 영역으로 세는 이유
VSEPR에서 자주 놓치는 부분이 다중 결합이에요. 이중 결합은 전자쌍 2쌍, 삼중 결합은 전자쌍 3쌍을 포함해요. 그런데 전자 영역을 셀 때는 이중 결합도 1개, 삼중 결합도 1개로 세요.
그 이유는 중심 원자 주변에서 공간을 차지하는 방향이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CO₂에서 C=O 이중 결합은 산소 하나 쪽으로 뻗은 하나의 전자 영역이에요. 전자쌍이 두 쌍 들어 있다고 해서 서로 다른 방향 두 개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CO₂의 중심 C는 이중 결합 두 개를 가지고 있지만 전자 영역수는 2개예요.
이 원칙을 지키면 분자 구조 예측이 훨씬 명확해져요. “결합 차수”와 “전자 영역수”는 구분해야 해요. 결합 차수는 단일, 이중, 삼중 결합처럼 결합의 세기를 설명하는 데 중요하고, 전자 영역수는 중심 원자 주변의 공간 배열을 예측하는 데 중요해요.
중심 원자가 두 개 이상인 분자
지금까지는 중심 원자가 하나인 분자를 주로 봤어요. 하지만 실제 유기화합물이나 생체분자에서는 중심 역할을 하는 원자가 여러 개일 수 있어요. 이때는 분자 전체를 한 번에 하나의 모양으로 단순화하기보다는, 각 중심 원자 주변의 전자 영역을 따로 봐야 해요.

예를 들어 어떤 분자 안에 C 원자가 있고, 그 C 주변에 전자 영역이 4개라면 그 탄소 주변은 정사면체형에 가까워요. 결합각은 약 109.5°로 생각할 수 있어요. 같은 분자 안에 O 원자가 있고, 그 O 주변 전자 영역이 3개라면 그 산소 주변은 평면 삼각형 배열을 바탕으로 해요. 또 O 주변 전자 영역이 4개이고 그중 고립 전자쌍이 2개라면 물처럼 굽은형이 될 수 있어요.
즉 중심 원자가 여러 개 있는 분자는 각 원자 주변의 지역적인 기하학적 구조를 따로 분석해야 해요. 유기화학에서 탄소가 sp³, sp², sp처럼 다른 혼성화를 가지며 서로 다른 결합각을 보이는 것도 이런 관점과 연결돼요.
분자의 모양과 극성
분자 구조를 예측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분자의 극성을 판단하기 위해서예요. 극성 결합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분자 전체가 극성인 것은 아니에요. 결합 쌍극자들이 벡터처럼 합쳐지기 때문이에요.
쌍극자 모멘트는 방향과 크기를 가지는 벡터예요. 전기음성도가 큰 원자 쪽으로 전자밀도가 치우치면 결합 쌍극자가 생겨요. 그런데 분자 안의 여러 결합 쌍극자가 서로 같은 크기이고 반대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면 서로 상쇄돼요. 이 경우 결합은 극성이어도 분자 전체의 쌍극자 모멘트는 0이 될 수 있어요.

CO₂가 대표적인 예예요. C=O 결합은 극성 결합이에요. O가 C보다 전기음성도가 크기 때문에 결합 전자쌍은 O 쪽으로 치우쳐요. 하지만 CO₂는 선형 구조이고, 양쪽 C=O 결합 쌍극자가 크기가 같고 방향이 서로 반대예요. 그래서 두 쌍극자가 상쇄되어 분자 전체 쌍극자 모멘트는 0이에요. 따라서 CO₂는 비극성 분자예요.
H₂O는 다르게 행동해요. O—H 결합은 극성 결합이고, 물 분자는 굽은형 구조예요. 두 O—H 결합 쌍극자가 서로 완전히 반대 방향이 아니기 때문에 상쇄되지 않아요. 두 벡터의 합이 남고, 물 분자 전체는 극성 분자가 돼요.
즉 분자의 극성은 결합의 극성과 분자 모양을 함께 봐야 해요.
극성 결합을 가지지만 쌍극자 모멘트가 없는 분자
극성 결합이 있어도 구조가 대칭적이면 전체 분자는 비극성이 될 수 있어요. 이런 경우는 꽤 많아요.

먼저 선형 분자 BAB 형태를 생각해볼 수 있어요. 중심 A 양쪽에 같은 B 원자가 붙어 있고, 두 결합이 동일하다면 결합 쌍극자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같은 크기를 가져요. CO₂가 여기에 해당해요. C=O 결합은 극성이지만, O=C=O가 직선이고 양쪽이 같기 때문에 전체 쌍극자 모멘트는 0이에요.
평면 삼각형 분자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요. SO₃처럼 중심 원자 주변에 같은 원자 세 개가 120° 간격으로 배열되면, 세 결합 쌍극자가 대칭적으로 상쇄될 수 있어요. 결합 하나하나는 극성이어도 세 벡터의 합이 0이 되면 전체 분자는 비극성이에요.
정사면체 분자에서도 네 결합이 모두 같고 대칭적이면 전체 쌍극자 모멘트가 0이에요. CCl₄가 대표적인 예예요. C—Cl 결합은 극성 결합이지만, 네 개의 C—Cl 결합이 정사면체 방향으로 완전히 대칭 배치되어 있어요. 그래서 결합 쌍극자가 모두 상쇄되고 CCl₄는 비극성 분자가 돼요.
이런 예들은 “극성 결합이 있다”와 “분자가 극성이다”가 같은 말이 아님을 보여줘요. 분자 전체의 극성은 결합 쌍극자의 벡터 합으로 판단해야 해요.
비대칭 구조에서는 쌍극자 모멘트가 남아요
반대로 결합 쌍극자가 상쇄되지 않으면 분자는 극성이 돼요. 물이 대표적이고, 암모니아도 대표적인 예예요.
NH₃에서는 N—H 결합이 극성을 가져요. N이 H보다 전기음성도가 크기 때문에 결합 전자쌍은 N 쪽으로 치우쳐요. NH₃의 분자 모양은 삼각뿔형이에요. 세 N—H 결합 쌍극자와 N의 고립 전자쌍에 의한 전자 분포가 대칭적으로 완전히 상쇄되지 않기 때문에, NH₃는 전체적으로 극성 분자예요.
H₂O는 굽은형 구조이므로 두 O—H 결합 쌍극자가 서로 상쇄되지 않아요. 산소 쪽으로 전자밀도가 치우친 벡터들이 합쳐져 물 분자는 큰 쌍극자 모멘트를 가져요.
따라서 분자 극성을 판단할 때는 다음 질문을 해야 해요. 첫째, 결합 자체가 극성인가? 둘째, 그 극성 결합들이 분자 구조 안에서 대칭적으로 상쇄되는가? 둘 중 하나만 보면 판단이 틀릴 수 있어요.
VSEPR로 분자 구조를 예측할 때의 핵심
VSEPR은 완벽한 양자역학 계산은 아니지만, 많은 분자의 구조를 빠르고 직관적으로 예측하게 해줘요. 특히 중심 원자 주변의 전자 영역수와 고립 전자쌍 수를 알면 분자 모양을 꽤 잘 예측할 수 있어요.
전자 영역수 2개는 선형, 3개는 평면 삼각형, 4개는 정사면체, 5개는 삼각쌍뿔, 6개는 팔면체를 기본으로 해요. 여기에 고립 전자쌍이 들어가면 실제 분자 모양은 굽은형, 삼각뿔형, 시소형, T자형, 사각뿔형, 사각평면형처럼 달라져요.
그리고 분자 모양은 분자의 극성 판단에도 직접 연결돼요. 결합이 극성이어도 구조가 대칭이면 쌍극자 모멘트가 상쇄되어 비극성 분자가 될 수 있고, 구조가 비대칭이면 전체 쌍극자 모멘트가 남아 극성 분자가 될 수 있어요.
이번 글의 핵심 정리
VSEPR 모형은 중심 원자 주변의 원자가 전자쌍들이 서로 반발하여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는 방향으로 배열된다고 보는 모형이에요. 결합 전자쌍과 고립 전자쌍이 모두 반발에 참여하며, 단일 결합, 이중 결합, 삼중 결합은 각각 하나의 전자 영역으로 세요.
전자 영역의 기하학적 구조는 중심 원자 주위의 모든 전자 영역 배열이에요. 여기에는 고립 전자쌍도 포함돼요. 반면 분자의 기하학적 구조는 실제 원자핵의 위치만 보고 정해요. 그래서 고립 전자쌍이 없으면 두 구조가 같지만, 고립 전자쌍이 있으면 달라질 수 있어요.
전자 영역수 2개는 선형 구조이고, 대표적으로 CO₂가 있어요. 전자 영역수 3개는 평면 삼각형 배열이며, 결합 영역 3개이면 BF₃처럼 평면 삼각형, 결합 영역 2개와 고립 전자쌍 1개이면 굽은형이 돼요. 전자 영역수 4개는 정사면체 배열이고, 결합 영역 4개이면 CH₄처럼 정사면체형, 결합 영역 3개와 고립 전자쌍 1개이면 NH₃처럼 삼각뿔형, 결합 영역 2개와 고립 전자쌍 2개이면 H₂O처럼 굽은형이에요.
전자 영역수 5개는 삼각쌍뿔 배열이에요. 결합 영역 5개는 PCl₅처럼 삼각쌍뿔형, 결합 영역 4개와 고립 전자쌍 1개는 SF₄처럼 시소형, 결합 영역 3개와 고립 전자쌍 2개는 ClF₃처럼 T자형, 결합 영역 2개와 고립 전자쌍 3개는 XeF₂처럼 선형이에요.
전자 영역수 6개는 팔면체 배열이에요. 결합 영역 6개는 SF₆처럼 팔면체형, 결합 영역 5개와 고립 전자쌍 1개는 BrF₅처럼 사각뿔형, 결합 영역 4개와 고립 전자쌍 2개는 XeF₄처럼 사각평면형이에요.
고립 전자쌍은 결합 전자쌍보다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해요. 그래서 고립 전자쌍 수가 늘어날수록 결합각은 작아지는 경향이 있어요. CH₄는 109.5°, NH₃는 약 107°, H₂O는 약 104.5°의 결합각을 가져요.
분자의 극성은 결합 쌍극자 모멘트의 벡터 합으로 판단해요. CO₂처럼 극성 결합을 가져도 구조가 대칭이면 전체 쌍극자 모멘트가 0이 되어 비극성 분자가 될 수 있어요. 반면 H₂O처럼 굽은형 구조를 가지면 결합 쌍극자가 상쇄되지 않아 극성 분자가 돼요. SO₃, CCl₄처럼 대칭적인 분자도 극성 결합을 가지더라도 전체적으로는 비극성이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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